오랜 숙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 뒷이야기(1)

반대투쟁과 결자해지 차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 선정 반영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4-04-09 10: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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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야사’는 환경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환경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건들의 숨어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이번 호(통권 304호)에서는 방폐장 건설과 관련된 뒷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 이상은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2005년 초 90년대 환경처차관을 지낸 한갑수 전 농림부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산업자원부에서 19년을 끌어 온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해 ‘부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니 위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위원회 구성을 위해 한 위원장은 환경 분야 원로 한 분과 의논했는데 그 분이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추천한 원로분의 권유도 있었지만 원자력 발전이 우리나라 전력공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폐기물을 처분할 마땅한 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흔쾌히 참여의사를 밝혔다.

 

2005년 3월 11일에 과학·기술, 인문·사회, 언론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의 민간 전문가 17인이 산자부장관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음으로써 ‘부지선정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동안 이 같은 성격의 위원회를 구성할 때는 주로 반대 세력을 대표하는 위원과 주민 대표들이 포함됐는데 방폐장 부지선정위원회는 이를 배제하고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처분이 목적이었기에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했지만 오랜 경륜을 쌓아 온 위원들로 구성됐기에 위원회 운영과정 및 선정절차와 선정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 숙원사업인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뛰어들어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산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다. 원자력발전에 일정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의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위해성 때문에 처분장을 유치하려는 지자체가 없어 부지선정문제는 19년이나 표류해 왔다.

 

특히 원자력발전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비판하는 환경단체 중심으로 반대운동을 펼쳐 부지선정에 어려움이 있었기에 환경전문가인 나로서도 환경과 안전에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위원회에 참여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6위의 원자력 발전국으로 세계 31개 원자력 발전국 중 중·저준위. 원전수거물 처분시설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 슬로베니아와 벨기에, 네덜란드 5개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른 4개 나라들은 원자력 발전 비중이 낮아 처분시설의 필요성이 그리 절실하지는 않다. 결국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따라서 어차피 처분장은 어느 곳에라도 건설돼야 할 것이기에 부지선정위원회에 들어가 환경에 대한 피해가 가장 적은 곳으로 부지를 선정, 또한 가장 친환경적인 처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자세라고 생각했다.

 

△ 현재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조감도.

 

 

일본, 프랑스 등 처분시설이 있는 나라들의 경우 모든 절차가 투명하게 진행되고 주민 및 환경단체들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으로 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큰 반대 없이 처분장이 설치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계획단계에서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면 부지를 선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판단에 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나중에 내가 부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환경 분야 지인들은 언제쯤 그 위원회에서 나올 것이냐고 묻기도 했으나 나는 위원회에 참여해 환경문제를 충분히 고려한 부지가 선정되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곤 했다.

 

위원회 출범 당일에는 다른 급한 일정이 있어 위촉장만 받고 곧 자리를 떴기 때문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23일 국무총리가 총리공관으로 위원들을 초청해 그 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국무총리실에서 운영하는 정부정책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총리가 국회의원시절 환경 분야에서 활동을 많이 했었기에 총리와는 구면이어서 속에 담아 둔 얘기까지 할 수 있었다.

 

2003년 부안에서 방폐장 유치 신청을 해 엄청난 저항에 부딪쳐 포기하게 될 때까지의 방폐장은 모든 방사성 폐기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소의 한 사업이 한미원자력협정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계기로 검토가 시작돼 2004년 12월 원자력위원회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사용 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분리한다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에 2005년 3월 초 국회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의결해 처분시설이 위치한 지역에는 시용 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들어설 수 없도록 했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용어 변경도 쉽지 않아

 

당시 국무총리는 과거 야당의원 시절, 굴업도가 후보지역으로 검토됐을 때 앞장 서 반대투쟁을 벌려 무효화 시킨 전력이 있어 결자해지 차원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는 선정해야겠다는 그의 의지도 반영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잘 알려졌다시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홍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찬장에서 많이 오갔다.

 

간담회장에서 총리는 고향에 폐 금광이 있어 그곳에 처분장을 유치하는 문제로 고향 분들의 의사를 타진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우선 용어부터 바꿔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세 단어 모두 혐오감을 갖게 하는 단어인데 이 세 단어를 조합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아무리 주민 친화적으로 조성한다 한들 국민들이 받아들이겠냐는 의미였다.

 

총리를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이 내 의견에 공감했고 일부위원들은 적절한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 시점에서 명칭을 변경하면 주민을 속이려 한다는 공격만 받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 명칭 변경은 시도하지 않았다.

 

그 후 위원회 활동을 하는 기간에도 원자력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섬뜩한 용어들을 순화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워낙 오랜기간 사용해왔기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경주에 건설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라는 명칭으로 건설되고 있다.

 

△ 월성 원자력환경관리센터 전망대.

 

 

부지선정위원회는 위촉식 후 3월 14일 첫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11월 4일 부지를 확정하고 활동을 마감하기까지 총 22회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거의 모든 공식회의는 조찬 모임으로 다소 이른 7시에 진행됐다. 사회 각 분야의 원로급으로 위원회가 구성돼 새벽잠이 없는 편이어서 그런지 7시 조찬이 이르다는 불평을 하는 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효율적인 위원회 운영을 위해 4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했는데 나는 이 중 ‘부지적합성소위원회’와 ‘부지선정기준소위원회’에 소속돼 회의와 현장 방문 등의 활동에 참여했다.

 

‘사업추진여건 평가기준’에 4가지 제척기준으로 ‘법정동식물 보호구역’, ‘국립공원구역’ ‘문화재보호구역’ 및 ‘상수원보호구역’이 포함됐는데 당초 상대적 평가기준으로 고려하던 일부 항목까지 강력히 주장해 제척기준으로 했다.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도 제척기준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관철시키지 못했고 ‘생태자연도 1등급 면적 점유정도’를 상대적 평가기준에 포함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다음에 계속)

 

이상은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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