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생활의 시작 환경마크 탄생 비하인드④

녹색구매법의 선도국가가 되기까지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4-10-08 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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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야사’는 환경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환경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이슈들 속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이번 호(통권 310호)에는 지난 세 달에 이어 환경마크 탄생과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환경마크의 발전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탄생

  

△이상은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2004년은 환경마크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온 해가 됐다.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친환경상품구매촉진에관한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 법으로 우리나라는 소위 ‘녹색구매법(Green Procurement Act)’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가 되어 선도적인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 법에 의해 전국 3만 여 곳에 달하는 공공기관에서는 환경마크인증이나 우수 재활용제품인 GR마크 인증을 받은 제품의구매가 의무화 됐다. 법 제정과정에서 법의 적용 대상을 민간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민간에 까지 의무구매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민간부문은 자율적으로 동참하도록 한다는 선에서 정리됐다.

 

녹색구매법 제정과 뒷 이야기

 

그런데 법의 제정과정에서 기술표준원에서 부여하는 GR마크 인증업무를 대행하는 GR 협회(현 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와 협의했는데 서로 호의적인 태도로 협의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GR협회는 속으로는 이 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확인해 보니 2001년에 개정된 ‘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에 의해 공공기관의 GR제품, 즉 우수재활용제품 구매가 의무화돼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으로 공공기관의 구매 의무화가 환경마크로 확대되고, 이와 함께 환경마크 인증 제품과 GR인증제품이 부딪칠 경우 소비자가 환경마크 인증제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내심 반대하는 입장에 있게 된 것이다.

 

당시 국회환경노동위원장은 GR협회장의 언론계 후배여서 GR협회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고 있어 위원장은 다소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의무구매는 너무 과한 것 같으니 권고사항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결국 환노위원장은 양 협회의 회장과 한 곳에서 만나 조정을 시도했고 그 자리에서 GR협회의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들었으며, 그들이 우려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 위원장은 환경마크협회를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오해해 회원사들을 잘 이해시키고 양 협회 회장들이 잘 협의하여 원만하게 법 제정이 이루어지도록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길래 환경마크협회는 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이지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 

 

이 법에는 환경마크협회가 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으로 ‘친환경상품진흥원’을 설립하고 환경마크협회를 친환경상품진흥원으로 전환시키도록 되어 있어 위원장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는데 협회라는 명칭 때문에 순간 착각을한 것이다. 그 후 결국 두 제품이 충돌할 경우는 GR인증제품의 구매를 우선한다는 내용에 합의하고 원안대로 법제정을 추진하였다.

 

사실 환경마크 인증제품이나 GR 인증제품 우수한 제품들인데도 일반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재활용제품은 더욱 품질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두 제품이 충돌할 경우 환경마크제품을 선호할 것이 뻔하기에 재활용촉진을 위해 재활용제품을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환경마크협회, 친환경상품 진흥원으로2004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친환경상품상품구매촉진에관한법률(현 녹색제품구매촉진에관한법률)’이 통과되고2005년 7월 발효에 맞추어 환경마크협회를 ‘친환경상품진흥원’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그 다음 과제였다. 

 

임기 2년의 회장을 연임해 가면서 마지막 회장으로 전력을 기울였지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진흥원의 출범과 함께 새로운 인물이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대원장 선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자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들과 협회 직원, 일부 환경부 고위 간부들도 내가 초대 원장을 맡아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 극구 사양했다. 그런 와중에 환경부 고위직 출신으로 환경부 산하 단체장을 했던 분이 신설기관의 원장을 맡아 기관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일해 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분은 환경부 근무 시절 한번 옳다고 생각한 일은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분으로유명했으나, 시민 단체와의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던 터라 시민단체에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며 나더러 초대원장을 맡아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도 좀 더 고민을 해야 했다. 

 

사실 평판과는 관계없이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분이 초대원장으로 일하는 것이 조기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명분만 내세울 입장이라는 생각에대학에 휴직에 대해 협의를 하는 한편 환경와는 비상근으로 초대 원장을 하는 방안의 가능성도 타진해 보았다.

 

그러나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GPN의 공동회장들이 환경부 장관을 면담하기로 한 자리에서 나를 초대 원장으로 할 것과 내가 제시한 조건을 환경부가 받아줄 것을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좀 난처한 입장이 됐지만 같은 시간에 환경부 소속기관장을 선임하는 추천위원회가 열리게돼 다행이었다. 추천위원회 날 조금 일찍 환경부를 방문해 협의를 하던도중, 차관이 오랫동안 환경마크협회 사무국장을 지낸 이상영 씨를 초대원장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훌륭한 선택이라고 대답하면서 본인의 의사는 확인했는가를 물어봤더니 아직이라는 답을 들었다. 이에 차관에게 이상영 씨를 선임하려면 미리 본인에게 알려주고 나와도 충분히 협의했다는 얘기를 해 줘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왜냐하면 그날 오후 장관면담 자리에 이상영총장도 GPN공동대표들과 함께 참여하여 나를 초대원장으로 해 달라고 건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우여곡절 끝에 이상영 씨가 초대원장으로 결정되어 ‘친환경상품진흥원’이 출범했다. 

 

비록 오랫동안 정 들었던 환경마크협회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친환경상품진흥원’이라는 법정 기관으로 몇 단계 발전해 새 출발한 것이다.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이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오직 친환경제품 생산과 소비를 정착시키겠다는 열정과 순수한 마음만으로 고생해 온 직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그 후 한 지인으로부터 초대 원장 결정과정에 대해 엉뚱한 소문이 돌았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나와 환경부 고위관료 출신 둘이서 서로 초대원장을 하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정부에서 둘 다 포기하고 새로운 분을 원장으로 정했다고 하더라’ 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황당한 소문이라 무시해 버렸지만 항상 남에게 책잡힐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당시 거론되었던 환경부 고위관료 출신인 그 분을 원장으로 모시려던 환경부 일부 직원들의 일방적인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분과는 가까운 사이이고 지금도 자주 만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친환경상품진흥원 초대원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출범친환경상품진흥원 출범 이후 2008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또한 차례 변화를 겪게 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유사 기관통폐합 방침이 정해지며, ‘친환경상품진흥원’이 ‘환경기술진흥원’과 통합하게 된 것이다. 

 

사실 두 기관은 ‘진흥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외에는 업무에 유사한 점이나 중복되는 부분이 없는데 통합 대상으로 결정되었기에 두 기관의 통합을 내심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양 기관의 업무를 가장 잘 안다고판단해서인지 나더러 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출범시켰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친환경상품진흥원과 환경마크제도 운영에 초기부터 깊이 관여해 온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환경기술진흥원의 설립 등 환경 분야 기술 연구개발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관여를 해왔기에 내가 양 기관이 발전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주도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양 기관이 통합되어 출범한 ‘환경산업기술원’이 그 후 놀랍게 성장하여 역할을 잘 하고 있고 과거 환경마크협회 시절부터 친환경제품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을 포함한 직원들 대부분이 만족해하는 것을 보면 당초 두 기관의 통합에 부정적이었던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오래 전 신문 칼럼에 친환경제품에 관한 글을 개제한 것으로 시작된 인연은 양 기관의 통합추진위원장을맡아 ‘환경산업기술원’을 출범시키기까지 지속되었고 아직도 이분야 대한 내 개인적인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아쉬운 점은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 친환경제품 분야는 놀라운 발전을 하였으나 아직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환경마크협회장으로서 GEN이나 IGPN모임에 참여하면서 곧 우리나라 전문가가 GEN이나 IGPN의 회장을 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IGPN에는 우리나라 GPN의 사무총장이 Board Member로 참여하고 있으나 GEN의 집행부에는 우리나라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환경제품에 관한 남다른 인연으로 친환경제품 생산과 소비 확산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도 전문가를 앞에 내세워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활발한 국제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전문가가 국제 네트워크의 대표를 맡게 되는 등 친환경 제품의 생산과 소비 분야 선진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시기가 빨리 오게 되기를 바란다.

 

이상은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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