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생활의 시작, 환경마크 탄생 비하인드 (1)

윤서성 전 환경부 차관, 환경마크 안정과 발전 큰 기여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4-07-04 11: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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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 서울신문의 '굄돌' 칼럼의 집필진으로 참여하여 매주 한 편씩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 40대 초반의 나이로 경륜도 부족한 상태에서 매주 한편의 칼럼을 쓴다는 것이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정기적으로 구독하던 국제학술지에서 캐나다가 환경친화제품에 대한 인증제도를 시작하였다는 글을 봤다.

 

1979년 독일에서 시작된 환경마크제도는 이미 미국과 여러 유럽국가에서 시행되어 온 제도인데 캐나다가 이 인증제도를 시작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이 제도야말로 우리나라에 필요한 제도라는 생각에 이를 칼럼의 주제로 정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면서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으나 의식 수준이 이를 따르지 못해 환경보전은 정부나 전문가 그리고 시민환경단체의 몫으로 여겼던 시절이었다.

 

이에 제품을 구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 단계에서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구입하도록 함으로써 생활 속에서 환경보전에 동참하면 환경에 대한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즉 우리나라도 친환경제품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환경성이 우수한 제품의 생산과 유통을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신문에 칼럼이 게재된 후 환경보전협회 직원들이 찾아오겠다고 연락이 와 내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그동안 친환경제품 인증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해오고 있던 중 내 칼럼을 보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또 나에게 외국의 제도에 관한 자료가 있으면 도와달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나에게도 외국의 관련자료가 많지 않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그 후 1992년 환경보전협회에 '환경마크위원회'가 설치돼 환경부의 환경마크제도 인증업무를 대행하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경마크협회'로 독립하여 노융희 서울대 명예교수를 초대회장으로 모시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KEI 원장 취임과 함께 환경마크협회 회장 대행

 

그 이후 간간히 관련 회의 참석을 하는 정도였지 직접적으로 제도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1998년 9월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원장으로 취임하고 보니 전임 원장이 환경마크협회의 부회장으로 협회 업무에 참여했기에 그 업무를 이어 받아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래 관심이 있던 분야이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당시 회장이었던 이연숙 전 정무장관과 약속을 하고 협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연숙 회장은 그동안 환경부를 설득해 정부로부터 매년 8000만 원을 지원받도록 되었다며, 다른 업무가 많아 더 이상 회장직을 수행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계속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워낙 완강하여 결심을 되돌릴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새 회장을 모실 때까지 내가 회장업무를 대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회장 대행으로 협회 운영에 대한 보고를 받아보니 당시 협회의 재정 상태는 아주 열악해 직원 6명의 3달치 급여가 밀려있는 상태여서 회장 대행인 내 이름으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밀린 급여를 지불하는 등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적 근거도 없는 열악한 재정상태의 작은 협회 이름으로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받는 것은 불가능해 내가 담보를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것인데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직전 회장으로 일하면서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었던 환경운동연합의 최열대표가 선뜻 본인 명의로 은행 대출을 받아 줘서 밀린 급여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이 점에 대해 아직도 최열 대표께 감사하고 있다.

 

이후 전에 내가 이사로 있는 재단에서 90년대 후반 어려운 환경단체를 지원하기로 하고 몇 군데 알아본 후 한 단체를 선정하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지원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내가 환경마크협회 회장 대행을 하면서 협회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었기에 재단이사회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정부 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는 협회는 지원하기 곤란하다는 이사장의 입장이 확고해 성사 되지 못했다. 정작 대표로 있는 단체는 재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추천한 다른 단체가 재단의 지원을 받는 상황이 좀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후 협회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끝에 성장을 거듭하여 현재 준 정부기관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때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다.

 

 

윤서성 전 환경부 차관, 환경마크협회 안정 큰 기여

 

사실 환경마크협회와 같은 성격의 단체는 회장이 상근이 아니어서 사무국장 중심으로 운영돼, 회장이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상징적인 자리지만 그래도 회장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 좋은 분을 모시기 위해 환경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전직 장관 몇 분을 접촉했으나 모두 다른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그래서 전직 차관급을 모시기로 하자 당시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문위원으로 계시던 윤서성 전 차관이 먼저 떠올랐다.

 

윤서성 전 차관은 환경부에서 잔뼈가 굵은 분으로 인품이 좋고 환경부 직원들로부터의 신망도 높은 분이어서 최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자문위원 사무실에 찾아가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의외로 쾌히 승낙을 하셔서 몇 달 끌었던 회장 문제를 쉽게 해결됐고, 나는 회장대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윤서성 전 차관은 회장으로 일하시며 환경마크협회를 안정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다음에 계속)

 

이상은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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